네팔 최고 축제 추석을 쏙 빼닮았네 -한겨레

2012년10월31일 11시53분

[매거진 esc] 여행
여행작가 이하람의 네팔기행 (상)
히말라야와 축제의 나라 네팔의 ‘다사인’을 찾아가다


인도 ‘홀리’ 축제 광란 분위기
기대했지만
뜻밖에 차분하고 가족적인 명절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은 세계 10대 최고봉 가운데 8개의 봉우리를 병풍처럼 지니고 있다. 경이로운 자연경관과 햇빛을 머금은 신비로운 사원, 곳곳에 배어 있는 종교적인 색채로 지구촌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지난 10월23일 도착한 네팔은 막 우기가 끝나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히말라야의 눈부신 설산이 구름 속에 감춰두었던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아, 얼마나 그리웠던 풍경인가. 작년 겨울 네팔을 찾았을 때는 궂은 날씨 때문에 설산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는데, 카트만두 시내에서도 짱짱한 하늘 위에 보란 듯이 우뚝 선 산맥을 보니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처럼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히말라야 설산이 장관을 드러내는 10월과 11월을 네팔 트레킹 시즌이라 부른다. 이 계절에 네팔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인생 최고의 등산을 위해 네팔행 비행기에 오른다.

악기를 연주하며 마을을 행진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축제를 즐긴다.
그런데 이맘때쯤 네팔인들은 지구촌 손님맞이보다 더 중요한 일로 바쁘다. 바로 한 해 중 가장 길고 즐거운 축제 다사인이 열리기 때문이다. 열흘에서 길게는 보름간 이어지는 이 기나긴 축제는 악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한 여신 ‘두르가’를 숭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런데 축제를 맞이한 카트만두 시내는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가장 큰 축제라면 발 디딜 틈 없이 소란스러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열흘간의 축제기간 동안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정부기관과 군대도 업무를 멈춘다고 한다. 숙소가 자리한 여행자거리 타멜도 몇몇 가게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았고, 가까스로 찾은 식당에서도 서너개의 메뉴만 갖춘 ‘다사인 메뉴판’을 따로 내놓았다.

 

손님에게 이리도 무심한 축제라니 은근히 심통이 나기도 했지만, 네팔이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그들의 축제를 여유롭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오랜 친구인 텐파 라마가 내가 네팔을 다시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그는 네팔의 불교사원에서 동자승들을 가르치고 있는 승려이다. 네팔은 불교 인구가 11%밖에 되지 않지만 곳곳이 티베트 불교의 색깔을 진하게 갖고 있는 나라다. 텐파는 네팔의 승려이지만 힌두교 축제인 다사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네팔은 80%가 힌두교예요. 그래서 힌두교 축제는 나라 축제이기도 해요. 다 같이 쉬고 다 같이 즐겨요.” 그러나 그는 내가 좋아하는 퉁바(곡식 피와 조를 발효시켜 먹는 술)를 사주고 싶었는데 그곳 역시 문을 닫자 모두 다 쉬는 것이 썩 즐겁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10월 초, 중순에 시작해 보름달이 떠오르면 끝나게 되는 다사인은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청명한 가을에 찾아온다는 점, 흩어져 있던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모인다는 점, 그리고 새 옷을 차려입고 배부르게 음식을 먹는 점 등등. 마침 타멜의 골목에서 대여섯명의 악단이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지나갔다. 죽은 조상들을 위해 마을을 돌며 연주를 하고 향을 피우는 것이라고 텐파가 설명했다. 그 의미는 경건한 것이더라도 길 위에서 악기 소리를 만난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이다.
인도의 ‘홀리’ 축제처럼 색가루를 날리고 온 거리가 떠들썩한 광란의 파티를 기대했다.
축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에 달한다고 했는데, 며칠 뒤 찾은 카트만두의 두르바르 광장은 생각보다 차분한 모습이었다. 판타스틱한 잔치는 없지만, 매사에 정중하고 내성적인 네팔인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차분한 축제가 그들에게 더 어울리는 듯했다.
다사인은 ‘경건한 기원과 축복’을 위한 축제이다 보니 단순하게 광장으로 뛰어나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축제 하루하루의 절차에 따르며 가족, 이웃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축제의 초반에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기 때문에 지역으로 통하는 주요도로가 꽉 막히고 국내선 항공편도 일찌감치 동이 난다고 한다. 이때 네팔을 찾은 관광객은 영문도 모른 채 발이 묶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멀다는 핑계로 고향에 안 갈 수도 있지 않나요?” 갖가지 핑계가 통하는 한국의 명절을 떠올리며 텐파에게 묻자, 축제 기간이 열흘에서 보름이나 되기 때문에 친척을 못 만난다는 건 통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직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에만 축제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친척과 웃어른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고 여겨서 관계도 끊긴다고 하니, 명절마다 외국에 나가 있기 일쑤인 나에겐 무시무시한 말로 들렸다.
승리의 날이라 불리는 축제의 절정, 열흘째 날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다닌다. 이때 연장자는 아랫사람에게 덕담과 함께 티카라는 붉은색 염료를 찍어주는데 붉은색은 혈육을, 이마의 점은 신이 주는 축복을 의미한다. 덕담에 주술적인 의미가 보태지는 셈이다. 남은 티카를 대문 밖에 버리려는 어르신에게 부탁하자 접시에 남아 있던 붉은 티카를 듬뿍 내게 발라주었다. 티카는 생쌀가루와 붉은 염료를 요구르트에 짓이겨 만들었기 때문에 접착력을 유치할 수 있다.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티카를 이마에 찍고 카트만두 거리를 걷는데, 이번에는 여인들의 머리에 꽂은 연두색 풀이 눈에 들어왔다. 잔디를 뽑아놓은 것 같은 이것은 보리 싹으로 축제 첫날 심어 열흘째 되는 날 싹을 잘라 머리와 귀에 꽂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전통방식은 여인들이 소똥이 담긴 접시에 심어 열흘을 기다려야 하지만, 골목 곳곳에는 보리 싹을 파는 상인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곡식이 담긴 의미처럼 수확과 결실을 기원하기 위함인데, 귀에 꽂은 남성들보다 검은 머리의 네팔 여인들에게 잘 어울렸다. 다사인에만 볼 수 있는 일회용 액세서리인 셈이다.
다사인은 철저하게 정해진 순서대로 축제가 진행된다고 한다. 일곱번째 날은 네팔의 고도시 고르카에서 제물로 사용될 꽃이 카트만두로 오는 날. 8일째 되는 날은 가축들이 신전에 바쳐지는 날, 아홉번째 날은 사원을 방문하는 날, 이런 식으로 다사인은 아주 잘 짜인 대규모 축제이다. 특히 여덟번째 날이 되면 셀 수도 없는 염소들이 신전에 바쳐지는데 다사인에 염소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달치 월급 지불하고
너도나도 염소 사 제물로
온 나라가 염소고기 잔치네


피의 제사가 있던 날, 나는 차마 염소가 줄줄이 도살되는 광경을 볼 수가 없었지만 그 다음날 거리마다 도축된 염소고기들이 쏟아져 나온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염소들이 재단에 바쳐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염소 한 마리는 네팔 근로자의 한 달치 월급에 달한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네팔인들은 다사인에 가축의 피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는단다. 그래서 돈을 꾸어서라도 염소를 사고 그동안 모은 돈을 염소 사는 데 쏟아붓기도 한다. 이래저래도 한 마리 살 돈이 안 된다면 몇몇이 돈을 모아서라도 염소를 사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염소 한 마리에 스무 명까지 돈을 모으기도 한다. 피를 바친 염소는 다시 염소 주인의 몫이 되는데 한 마리를 함께 돈을 모아 산 사람들은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궁금했다.
“부위별로 똑같이 사람 수만큼 잘라요. 똑같이 돈 냈으니까 똑같이 공평하게 나눠야죠.” 그러고 보니 골목마다 임시로 천막 도축장이 차려져 있었다. 이처럼 살생이 이루어지는 순간, 불교사원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풍경이 연출되는데 마치 축제를 맞은 듯 꽃과 촛불들로 가득했다. 어느 때보다 간절한 불공이 이뤄지는 이유는 힌두교에서 행해지는 하루 동안의 살생을 참회하기 위해서란다.
“다사인 축제가 우리 불교인들에게도 축제라고 볼 수 있죠. 우리에겐 그들의 살생을 대신 기도하는 축제죠.” 텐파는 네팔의 불교와 힌두교는 서로를 미워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네팔의 고도시 네와르 민족의 종교는 불교와 힌두교의 중간 형태를 띤다. 불교사원에서 힌두 방식으로 기도를 올리는 식이다.
다음날, 다사인에만 볼 수 있다는 또다른 풍경을 찾아 마을 어귀 공터로 향했다. 길고 튼튼한 대나무로 엮은 ‘핑’이라고 불리는 그네에 마을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몽룡이 한눈에 반한 춘향이의 그네 타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무섭고 위험해 보였지만 아이들은 히말라야가 닿을 때까지 있는 힘껏 날아올랐다.
핑 그네는 다사인을 즐기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전통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절에 그네를 타고 널뛰기라는 걸 한다고 하니 텐파가 반가워했다. 물론 지금 아이들은 휴대전화 오락에 빠져 있다는 말은 아꼈다. 마땅히 오락문화가 없는 네팔은 다사인 기간 동안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놀거리’를 만들어준다.

그네 주변으로 아이들이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지만, 꼬마 아이들은 형들에게 새치기를 당해 그네 한번 타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자 아이들은 서로 모델이 되겠다고 싸움이 일어날 판이었다. 다사인이 끝나면 두번째로 큰 축제 티하르가 찾아오기 때문에 핑 그네는 거의 한 달 동안 아이들의 가장 좋은 놀이기구가 된다고 한다.
명절엔 누구나 즐겁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평소에는 금지하던 도박도 다사인의 마지막 날만큼은 허락된다. 경건한 사원 안에서도 마을 안 골목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세계문화유산인 불탑 ‘보우다나트’ 안에서도 주사위와 카드패가 돌아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따고 잃는 건 패를 쥔 사람의 마음이지만 잃어도 즐거우니 이것이 이 또한 명절의 기쁨 아닐까.
기나긴 축제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가 시작되었다. 네팔 최대 명절이자 축제인 다사인이 끝나는 게 아쉬운 사람들은 3~4일 더 여흥을 즐기면서 축제의 잔불을 쪼인다.
그들은 실로 오랜만에 염소고기로 포식했지만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타멜의 상인들은 여행객들을 유혹하는 기술로 일년에 단 한차례 성수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종교는 다시 삶 속으로 녹아들어가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네팔=글·사진 이하람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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